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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빔/우상의 실체

드라빔/우상의 실체

  • 드라빔/우상의 실체

창세기 31장 29-36절, 이사야 17장 7, 8절 가톨릭과는 달리 개신교는 성모 마라아상이나 성상(아이콘)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구나 십자가도 우상이니 그것조차 예배당에서 치워야한다고 주장하는 개신교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외형적인 우상만 우상일까요? 그 외형적 우상만 섬기지 않으면 되는 걸까요? 사람이 만들고 지키는 신 : 사람을 만들고 지키시는 신 라헬이 친정아버지 집에서 도망 나오면서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쳤습니다. 창세기 31장 19절 입니다. ‘라헬은,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나간 틈을 타서, 친정집 수호신의 신상들인 드라빔을 훔쳐 냈다.’ 라헬이 이 드라빔을 훔친 이유는 금덩이처럼 값비싼 물건이어서 그런 게 아니었 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가정을 보호하는 수호신들이었습니다. 이 신들은 아버지 라반의 집에 서 꾀나 큰 유익, 행운을 안겨준 휴대용 우상이었습니다. 만약 이 드라빔이 종종 불운을 가져 다주었다면 아버지가 라헬에게 챙겨 주었다 해도 거부했을 겁니다. 라반의 반응을 보면 라반의 집에서 이 드라빔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겐 이 드라빔이 딸들, 외손자들, 야곱이 이끌고 나간 재산, 이것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었던 것 같습니다. 30절입니다. ‘자네가 아버지의 집이 그리워서 돌아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어찌하여 나의 수호신상들을 훔쳤는가?"’ 라반이 도망간 야곱을 불길처럼 달려 뒤 따라온 속 내는 이 드라빔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33-35절입니다. ‘라반은 먼저 야곱의 장막을 뒤졌다. 다음에는 레아의 장막과 두 여종의 장 막까지 뒤졌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레아의 장막에서 나온 라반은 라헬의 장막으 로 들어갔다. 라헬은 그 수호신상들을 낙타 안장 밑에 감추고서, 그 위에 올라타 앉아 있었다. 라반은 장막 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라헬이 자기 아버지에게 말 하였다. "아버지,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지금 저는 월경중이므로, 내려서 아버지를 맞이 할 수 없습니다." 라반은 두루 찾아보았으나, 끝내 그 수호신상들을 찾지 못하였다.’ 우상인 드라빔은 라헬의 손을 탔습니다. 라반은 세 차례나 드라빔을 찾기 위해 장막을 수색 을 했지만 결국 찾아 내지 못합니다. 이 말씀은 가짜 신 즉, 우상과 하나님의 차이점이 뭔지 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우상’ : ‘하나님’ = ‘사람 이 만들고 지키는 신’ : ‘사람 을 만들고 지 키시는 신’ 입니다. 우상의 특징은 스스로 자신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우상은 그것을 만 든 사람이 지키지 못한다면 자기 스스로는 결코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잃어버림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시고 그가 만드신 사람을 지켜내십니다. 23, 24절 말 씀입니다. ‘라반은 친족을 이끌고 이렛길(7일)을 쫓아가서, 길르앗 산간지방에서 야곱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 날 밤에 아람 사람 라반이 꿈을 꾸는데,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좋은 말이든 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하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리 고 라반은 이 사실을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29절입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자네를 얼마든 지 해칠 수 있네. 그러나 어젯밤 꿈에 자네 조상의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에게 경고하시기를 '좋은 말이든지 나쁜 말이든지, 야곱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하셨다네.’ 이렇 게 우상은 사람이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켜 내야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은 사람을 잃어 버리지 않고 지켜내십니다. 내가 만든 것을 보기 : 나를 만드신 이를 보기 이렇게 우상은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우상은 사람의 보호와 지킴이 필요합니다 . 반 면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 이렇게 우상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의 차이는 절대적으로 구별됩니다. 그럼 우상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사야 17 장 7, 8절입니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우러르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바라보리라 . 제 손으로 만든 제단을 다시는 우러르지 아니하고 제 솜씨로 만든 아세라 목상과 분향제단을 바라보지 아니하리라 .’ 이 말씀은 우리의 일상에서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만든 것을 보지 말고, 나를 만드신 이를 보라는 것입니다 .’ 내가 만든 것을 보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나를 만드신 이를 보는 것은 예배입니다. 그럼 ‘내가 만든 것 ’은 무슨 의미일까요? 말씀에 의하면 ‘제 솜씨로 만든 아세라 목상과 분 향제단’입니다. 이것을 현대어로 바꾸면 내 인생을 몽땅 투자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들, 그 래서 중요하고 위급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해 온 소위 ‘라떼’로 대별되는 과거의 찬란했던 나입니다. 반면 ‘나를 만드신 이를 본다 ’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삶의 페러다임의 변화를 의 미합니다. 한 두 개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삶의 패턴 전체를 다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가 크리스천임에도 솔직히 ‘내가 만든 것’, ‘내가 만들 것’에 집중하고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나에게도 드라빔이 하나 둘 생기면 나도 그만큼 떳떳해지고 자신감이 넘칩니다. 내가 크리스천이 된 이유도, 그래서 ‘나를 만드신 분’을 바라보는 이유도, 모두 ‘내가 만든 것’, ‘내 가 만들 것’에 어떤 방법으로라도 도움을 받기 위함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니 ‘나를 만드신 이를 본다’는 것은 지금껏 해오던 내 삶이 방식에서 주님께 기도하는 횟수를 좀 더 많이 가져보라는 의미가 아닌 겁니다. 목적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내가 만든 우상을 더 많이 만들 것이고 그것들을 숭배하게 되니까요. ‘나를 만드신 이를 본다’는 것은 내 삶의 목적이 나를 만드신 하나님의 업적과 그분 자신에 대하여 묵상하고 그분을 선전하는 일로 바뀌는 겁니다. 그럼 목사나 선교사를 하라는 뜻인가 요? 일부분 맞습니다. 그러나 목사나 선교사도 자기가 만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 목적이 된다 면 의미가 없습니다. 반면 평신도라도 일상의 삶이 나를 만드신 분을 바라보고 그래서 찬송하 며 그분의 하신 일을 선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우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게는 너무나 중요한데 내가 지키지 않으면, 혹은 내가 알리지 않으면, 누구도 알지 못하고 언제든 잃어버릴 가능성이 큰 그것입니다. 나는 너무나 중요한데 남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지만 나는 반드시 지켜내려고 고집했던 ‘라떼’ 입니다. 즉 나의 경력, 학력, 권 력, 금력 등이겠지요. 지금껏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가 목숨 걸고 꼭 지켜내려 했던 것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생 각해 봅니다. 그중에 내가 지키지 않으면, 찾는 이도 없고,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들이라 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물론 내가 만든 것이니 중요하고 의미가 크지만 분명 우상입니다. 라헬처럼, 사람들이 어떤 형태의 우상이라도 소유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뭘까요? 우상은 인간 내면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자기만족이라는 ‘죄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상을 소유 하는 이유는 ‘내 맘대로 하고 싶은 욕망 ’ 때문입니다.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겠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뜻’과 상반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나를 위한 예배 : 주를 위한 예배 그래서 내가 밤낮없이 정성을 기울이는 이것이, 과연 우상인지 아닌지 식별할 수 있는 방법 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 또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자신의 반응 을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노하거나 절망한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우상을 만들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창세기 4장을 통해 ‘가인의 예배’와 ‘아벨의 예배’를 봅니다. 가인도 아벨도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준비하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예배’만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사람 자신이 만족하는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이게 우상 숭배이니까요. 반면 하나님을 위한 예배, 하나님이 만족하시는 예 배를 받으십니다. 누가복음 7장에도 ‘나를 위한 예배’와 ‘주를 위한 예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36-38절 말씀 입니다. ‘바리새파 사람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청하여,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 들어가셔서, 상에 앉으셨다. 그런데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었는데,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의 집에서 음식을 잡숫고 계신 것 을 알고서,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등 뒤에 발 곁에 서더니, 울면서,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랐다." 이 말씀에서 바리새인 시몬과, 죄인인 여자가 등장하는데 이는 ‘이름 있는 바리새인’과, ‘이 름 없는 죄인 여자’로 극적인 대비가 됩니다. 그런데 시몬은 자기를 위해 예수님을 초청했습 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반면 자타공인 죄인인 이 여인에게 있어서 모든 관심이 예수님 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자존심마저도 모두 예수님 앞에 드렸습니다. 44-46절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 여자에게로 돌아서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여자 를 보고 있는 거지?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에,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 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았다. 너는 내게 입을 맞추지 않았으 나, 이 여자는 들어와서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발라 주지 않았으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발랐다.’ 이 말씀은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정말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내 시선의 방 향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상을 섬기는지’, ‘하나님을 섬기는지’는 외적인 형상/Idol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나는, 나를 바라보고 실망하고, 내가 만든 것을 바라보고 또 실망합니다. 그런데 하나 님께 시선을 집중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내가 만든 것이 그것이 무엇이 든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것이 오히려 우상이 될 확률이 더 많아지니까요. 생각해보면 나는 바리새인처럼 예배드리는 것을 선호해왔습니다. 맘 아프게도 그게 신앙생활 잘 한다는 나의 실존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나는 과연 죄인인 이 여인과 같은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바리새인 시몬처럼 사회적으로 떳떳하고, 종교적으로도 흠이 없고 뭔가 이루어놓은 것이 많아야 예수님께 예배드릴 자격이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기서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이루어 놓은 것만이 우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나는 아물지 못한 내 상처,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내 원한, 여전히 짓밟히고 내 뜻대 로 되는 게 없어 절망한 내 맘을 가지고도 예배당에 나옵니다. 죄인인 이 여인의 모습과 같습 니다. 그런데 이것에 포커스를 맞추고 이것만 보고 가면 이것 역시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우상이란 나에게 머문 나의 모든 시선 입니다. 죄인인 이 여인은 자신을 둘러싼 자기 연민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 게 모든 시선을 집중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러니 자신에게 시선을 둘 리가 없었습니다. 이 여인이 이런 놀라운 예배를 드리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갈라디아서 6장 14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결국 우상은 자기 연민 즉 ‘자기 의’, ‘자기 애’입니다. 언제나 내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아 니 찬스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잡히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니 이제 우상의 정체를 알았으면 이것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단 한번만이라도 이 여인의 예배를 드리면 좋겠다’는 소원을 하면서 예배드리면 어떨까요? ‘자기 의’, ‘자기 애’를 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 의’, ‘하나님 사랑’을 배워야합니다. 바로 주 님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내가 졌소! 당신이 옳소! 당신 뜻대로 하이소! 나를 용서하이소! 이번 한해 우리 가정에서, 우리 공동체에서 기꺼이 즐거이 이 네 마리 소를 잘 키우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죽어야 하나 님이 나를 살리십니다. 그래야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 * 금주의 암송 말씀 이사야 17장 8절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제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기들의 손가락으로 만든 아세라 상들과 태양 신상은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다. * 금주의 묵상과 나눔 Q1. [나의 드라빔 찾기] 최근 내가 무언가를 잃어버렸거나,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걷잡 을 수 없는 분노나 절망을 느꼈던 적이 있나요? 혹시 그것이 내가 붙들고 있던 '드라빔(우상)' 은 아니었는지 나누어 봅시다. Q2. [지키는 신 vs 지키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은 "우상은 사람이 지켜야 하지만, 하나님은 사 람을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내 삶에서 내가 내 힘으로 지키려고 애쓰느라 지쳐버린 영역(예: 자녀의 미래, 사회적 평판, 노후 자금 등)은 무엇입니까? Q3. [라떼라는 이름의 우상] 이사야 17장 말씀처럼 '내 솜씨로 만든 것'을 바라보는 것이 우 상숭배라고 했습니다. 과거의 성공 경험이나 내가 쌓아온 커리어(일명 '라떼')가 하나님을 바 라보는 시선을 가로막는 나의 공로, 자랑을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Q4. [시선의 방향: 자기 연민과 예배] 죄인인 여인은 자신의 비참한 처지(자기 연민)에 빠져 있지 않고 예수님께만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 '나의 상처'에 집중하 는 것과 '나를 고치실 주님'께 집중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Q5. [네 마리 소 키우기] 설교에서 언급된 "내가 졌소, 당신이 옳소, 당신 뜻대로 하이소, 나 를 용서하이소"라는 네 문장 중, 이번 한 주간 우리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내가 가장 먼저 실 천해야 할 문장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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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0002, aa0002 주인장 2026-01-31 08:30:1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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